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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지겹고 역겹다. 모두 병든 것이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들은 주로 벌을 주고 때렸다. 박정희 군부독재 시대였다. 중,고등학교 때 선생님들도 주로 벌을 주고 때렸다. 전두환 군부독재 시대였다. 대학에 가서야 비로소 선생이 때리지 않고 벌 세우지 않고도 가르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다. 놀라워라.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는 교육과 훈육을 빌미로 얼마든지 교사의 폭력이 인정되는 분위기였다. 때리지 않는 선생은 있어도, 때릴 수 없는 선생은 없었다.

공부 못하고 준비물 못 챙기고 등록금 밀리고 대답 제대로 못하는 학생일수록 더 맞았다. 하여간 성적 나쁘고 가난할수록 더 맞았다. 나처럼 가난한데 공부도 못하고 성질까지 더러워서 선생한테 대드는 놈은 백 대 더 맞았다. 어금니까지 부러졌다. 그때는 그런 것이 '교권'이었다.

나는 안 맞았는데...라고 나서는 자들이 가끔 있다. 그들은 친구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관망하면서 그것에 길들여진 자들이다. 그것 역시 폭력에 길들여지긴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지금 각 교육 단위의 최상위 관리자, 정책 입안자, 책임자들은 대부분 폭력이 일상화된 환경에서 교육받은 분들이다. "교사는 예비 살인자"라는 어느 교육감의 표현이 괜히 가능한 것이 아니다. 독재의 폭력성이 영혼 깊숙이 배어있다. 이것은 거의 불치에 가깝다. (그들의 선생들이 이승만 독재와 식민지 교육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더 끔찍하다.)

우리 교육의 불행이 여기서 기인한다. 물리적 폭력이 사라졌어도 정신적 폭력이 횡행하는 분위기에서 교육하고 교육받았다. 지금 학교 현장에서 교사로 재직하는 분들 대부분은 독재시대 교육받은 선생들의 제자들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역시 그 폭력의 그늘을 함께 공유한 세대들이다.

폭력에 대한 공포와 피해의식이 잠재의식 속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무슨 피해라도 입지 않을까, 교사로부터 부당한 대접이나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소리 높이지 않으면 무시 당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피해의식의 저변에는 학교에 대한 불신과 사회적 불공정성에 대한 공포가 잘 학습돼 있다.

이겨야 하고, 제껴야 하고, 나만 살면 그뿐이고, 먼저 먹는 놈이 장땡이고, 힘 센 놈이 해처먹는 게 당연하고, 돈이 하느님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만 하면 그만인 교육을 받은 자들이 교육 정책을 만들고 선생이 되고 학부모가 되고 피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되고 민원인이 된다. 돌고 돌고 또 돈다. 여기에 무슨 출구가 있겠는가.

문제가 생기자 정책을 세우는 자들은 고작 그 대책으로, 교권을 침해하면 생기부에 올리겠다아아아~! 하고 협박한다. 대학이 전부라는 생각이 대가리에 암종처럼 박혀 있으니 그런 생각밖에 못한다. 그럼 대학 안 가겠다고 일찌감치 포기한 아이들은 어쩔건데? 교육도 포기할 건가?

북한의 사주를 받은 좌빨들이 만든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이 훼손됐다고도 주장한다. 손을 보겠다고 으르렁거린다. 고작 선언적 의미밖에 없는 조례 때문에 훼손될 교권이라면 그까짓 교권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독립적으로 이미 확보돼 있는 교권(수업권, 교육과정 결정권, 강의내용 편성권, 교육방법 결정권, 성적 평가권, 학생생활 지도권, 학생 징계 요구권 등)이 훼손돼 있다면 학생의 인권을 때려잡을 게 아니라 교사들의 '가르칠 권리'를 보장하고 강화하면 될 일 아닌가.

그러나 이런 말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더 이상 인성과 도덕성을 가르치지 않고, 아름다움의 가치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인간의 고귀한 품성을 멸시하고, 천박과 야비가 장악한 나라 꼬라지인 걸. 선생도 학생도 학부모도 경쟁 외의 덕목을 배운 바 없는 나라 꼬라지인 걸.

그러나 발이 가려운데 신발이나 긁을 일은 아니다. 이참에 우리 사회 전 구성원이 머리를 맞대고 작금의 우리 교육이 처한 현실을 다 드러내놓고 그 실천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도대체 동요 한 소절 부르지 못하는 초등학생, 음악과 미술을 배우지 않는 고등학생, 수업시간에 선생 앞에서 라면 먹는 걸 방송하고, 심지어 폭력을 행사하는 괴물들은 누가 만들었는가. 홧김에 아무나 죽여도 되는 괴물들은 누가 만들었는가.

누구 하나 죽어야 겨우 귀를 기울이는 척하는 이 사회 분위기도 참 지겹고 역겹다. 모두 병든 것이다.  
류근 시인 페이스북 서이초 자살 웹튠작가 작가아들 자폐 주호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