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채널 돌리는데 가수 송창식 선생이 나오길래 무심코 그걸 봤다. 탤런트 박원숙 님이 다른 패널들과 함께 밥 먹으면서 진행하는 프로였다. 송창식 선생이 기타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중간에 <사랑이야>를 불렀는데,
그 노래 가사를 구치소에서 썼다는 거시었다. 한창 활동하던 시기에 예비군 훈련을 안 나가서 "항토예비군법" 위반으로 20일이나 갇혀 있었다는 거시었다. 나는 그제야 아, 나도 향군법 위반으로 잡혀 들어간 적 있었는데! 화들짝 기억이 났다.
과거엔 군대 제대한 남자들이 어디 이사를 가면 15일 안에 반드시 동사무소에 전입 신고를 해야 했다. 그걸 하지 않으면 향군법 위반으로 고발되고 수배가 되는 시대였다. 나도 그 정도 상식이 있긴 하였지만 시바, 어디 방 한 칸이 있어야 전입신고를 하지. 집안이 쫄딱 망해서 전입 신고할 주소지가 없었다. 나는 스물 다섯 살이었다.
동가식 서가숙하며 빌빌 떠돌고 있는데 고속버스 터미널 앞에서 불심검문하는 경찰한테 덜컥 잡혔다. 온갖 잡범들과 포승줄에 굴비처럼 엮여서 서초경찰서까지 끌려갔다. 가면서도... 도무지 내가 뭔 죄를 졌는지를 몰라서 다리가 더 풀렸다. 나는 "운동권 학생"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수배가 되었지? 누가 나를 엮었나?
경찰서에 도착하자 어이없게도 향군법 위반이라는 거였다. 주민등록이 말소돼 있었다. 운동권 투사도 아니고 고작 군대 갔다 온 죄로 향군법 위반 수배자가 되어 있었다. 아니지, 가난해서 오갈 데 없는 죄로 수배자가 된 거시었다.
군대도 안 갔다 온 자들이 보수를 자처하며 안보를 극한 위기로 몰아넣는 꼴을 보면 밸이 꼴린다. 가난이라곤 쥐뿔도 모르는 자들이 연탄가루 얼굴에 묻히며 생쑈하는 꼴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사기치는 자들에게 또 속아가면서 나라 망하는 데 또 한 표를 보태겠다는 “서민“들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그들은 더하고 뺄 것도 없이 국가 멸망의 앞잡이들이다. 무지와 무식, 맹목과 확증편향은 그대로 범죄다. 공동체를 죽이는 범죄.
송창식 선생 덕분에 까맣게 잊고 있던 향토예비군법 위반 시절이 생각났다. '지상의 방 한 칸'이 간절했던 시절, 지독하게 가난해서 오히려 세상 일이 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시절. 나 거기서 참 오래도록 흘러왔구나.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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